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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낭만을 깨우는 첫 걸음 (에그타르트, 트램, 벨렘 지구 그리고 결론)

by 미필적쿠쿠 2026. 3. 16.

리스본 (에그타르트, 트램, 벨렘 지구)

유럽의 서쪽 끝, 대서양을 품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그 이름만으로도 설렘을 안겨주는 도시입니다.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곳은 낡은 건물 외벽을 장식한 아줄레주 타일과 좁은 골목을 달리는 노란 트램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리스본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서는 순간, 달콤한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언덕 너머로 펼쳐진 붉은 지붕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습니다. 리스본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화려한 랜드마크를 하나씩 정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의 일상 속에 스며든 맛과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는 데 있습니다.

리스본의 달콤한 영혼, 에그타르트 탐방기

리스본 여행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에그타르트입니다. 포르투갈어로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라 불리는 이 작은 디저트는 단순한 간식을 넘어 포르투갈의 역사와 자부심이 담긴 상징적인 음식입니다.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은 벨렘 지구에 위치한 파스테이스 드 벨렘입니다. 1837년부터 영업을 이어온 이곳은 수녀원에서 전해 내려온 비밀 레시피를 지금까지 지켜온 곳으로, 에그타르트의 성지라 불립니다.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잠시 망설여질 수도 있지만, 갓 구워진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 기다림은 순식간에 잊히게 됩니다.

얇고 바삭하게 부서지는 페이스트리 속에 담긴 부드럽고 진한 커스터드 크림의 조화는 그야말로 예술에 가깝습니다. 현지인들이 알려주는 팁이 있다면, 테이블에 놓인 계피가루와 슈가파우더를 넉넉히 뿌려 먹는 것입니다. 계피의 향이 더해지면 크림의 달콤함이 한층 깊어집니다. 여기에 진한 에스프레소인 비카(Bica) 한 잔을 곁들이면 완벽한 포르투갈식 아침 식사가 완성됩니다. 벨렘뿐 아니라 시내 중심가의 만테이가리아 역시 유명한 에그타르트 가게입니다. 이곳은 타르트가 갓 구워질 때마다 종을 울려 손님들에게 알리는데, 버터 향이 가득한 풍미 덕분에 벨렘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리스본은 디저트뿐 아니라 풍성한 식문화로도 유명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특히 사랑하는 식재료는 대구, 즉 바칼라우입니다. 소금에 절인 대구를 활용한 요리법만 수백 가지에 이른다고 할 만큼 다양한 요리가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잘게 찢은 대구와 감자, 달걀을 함께 볶아 만든 바칼라우 아 브라스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요리입니다. 또한 타임아웃 마켓과 같은 미식 공간에서는 유명 셰프들이 선보이는 현대적인 해산물 요리부터 전통적인 문어 요리까지 다양한 음식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언덕 위를 달리는 노란색 추억, 전통 트램 여행

리스본의 골목을 걷다 보면 ‘끼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울려 퍼지는 경쾌한 종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리스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노란색 전통 트램입니다. 도시의 길이 좁고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현대적인 버스보다 오랜 세월 동안 트램이 시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28번 트램은 리스본을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노선입니다. 이 노선은 마르팅 몬이스 광장에서 출발해 알파마의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 바이루 알투 언덕까지 이어지며 리스본의 주요 명소들을 연결합니다.

트램에 올라 나무 창틀을 붙잡고 있으면 마치 19세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창밖으로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건물 벽과 테라스에 널린 빨래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특히 알파마 지역의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 들리는 트램의 거친 소리는 여행에 묘한 박진감을 더해줍니다. 다만 28번 트램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조금 더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비교적 한산한 15번 트램을 타고 벨렘 지구로 향하거나, 아침 일찍 첫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트램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마음에 드는 곳에서 자유롭게 내려 걸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전망대가 보이면 망설이지 말고 내려보세요.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 서면 주황빛 지붕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테주강이 반짝이며 장관을 이룹니다. 리스본의 골목은 길을 잃을수록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름 모를 작은 광장에서 들려오는 파두 음악을 따라 걷다 보면 가이드북에는 소개되지 않은 나만의 특별한 장소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트램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리스본의 역사를 품은 움직이는 박물관과도 같습니다.

대항해시대의 영광을 품은 벨렘 지구의 산책

리스본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테주강 하구에는 포르투갈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벨렘 지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 탐험가들이 미지의 바다를 향해 출항하던 곳으로, 도시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웅장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강가에 우뚝 서 있는 벨렘탑입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이 강물 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하여 ‘테주강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탑은 과거 요새와 감옥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리스본을 상징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벨렘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석회암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과 아치들은 마누엘 양식 건축의 극치를 보여주며, 대항해시대를 이끈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의 무덤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어 역사적인 의미를 더합니다. 수도원 안뜰에 들어서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새소리와 섬세한 조각이 어우러져 경건한 느낌을 줍니다. 이곳의 장엄함은 포르투갈이 바다를 지배하던 시절의 영광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역사적인 공간을 둘러본 뒤에는 테주강을 따라 천천히 산책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돛 모양의 발견 기념비를 지나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리스본의 또 다른 상징인 사월 이십오일 다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닮은 이 다리는 현대적인 리스본의 모습과 역사적인 벨렘을 이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강변의 카페에 앉아 붉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리스본 여행에서 가장 평화로운 순간으로 남게 됩니다. 벨렘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여유가 공존하는, 리스본에서 가장 낭만적인 공간입니다.

결론

리스본은 한 번의 여행으로 그 매력을 모두 알기에는 너무나 깊고 매혹적인 도시입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에그타르트의 달콤함, 덜컹거리며 언덕을 오르는 노란 트램에서 마주친 현지인의 미소, 그리고 벨렘에서 바라본 붉은 노을까지. 이 모든 순간이 모여 리스본이라는 하나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냅니다.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진심이 느껴지는 도시에서, 여러분도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언덕을 오를 때 잠시 숨이 차더라도 그 끝에서 마주하는 전망대의 풍경은 분명 그 수고를 잊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